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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생활의 공간.

아마도. 집에서 가장 변화가 적은 공간.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 어떤 모양이든, 부엌이기만 하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기능을 잘 살려 오랜 세월 손때가 묻도록 사용한 부엌이라면 더욱 좋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깨끗한 행주가 몇 장 걸려 있고 하얀 타일이 반짝반짝 빛난다.
 구역질이 날 만큼 너저분한 부엌도 끔찍이 좋아한다.
 바닥에 채소 부스러기가 널려 있고, 실내화 밑창이 새카매질 만큼 더러운 그곳은, 유난스럽게 넓어야 좋다. 한 겨울쯤 무난히 넘길 수 있을 만큼 식료품이 가득 채워진 거대한 냉장고가 우뚝 서 있고, 나는 그 은색 문에기댄다. 튀긴 기름으로 눅진한 가스 레인지며 녹슨 부엌칼에서 문득 눈을 돌리면, 창 밖에서는 별이 쓸쓸하게 빛난다. 

-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中

위와 같은 글로 시작하는 이 책을 처음 본게, 아니 발견한게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 경준이네 집에서 였을거다.
그리고 경준이한테 빌려서 봤나.. 아니면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나..
뭐 암튼 그때쯤에 보긴 했다.
비록. 다 읽은 뒤에 기억에 남았던건 저 첫 도입부 뿐이었지만.

그게 요시모토 바나나의 첫 책이었고.
그 뒤로 작고 가벼워서 휴대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요시모토 바나나 라는 작가의 책을 사기 시작했고..
마찬가지 이유로 작고 가벼운 양장본으로 나오는 작가들의 책을 꾸준히 사게 되었던 것 같다.

두번째 본게..
대학교 들어가서 '키친' 이라는 책을 산 다음에 읽었고..
그때도 처음 읽을때와 마찬가지로 저 초반 도입부 말고는 크게 기억나는 것도, 생각나는 것도 없었다.
하긴, 그때 내가 살던 방엔 '키친' 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세번째-

엊그제 휴일근무를 하고.
몸 상태가 별로인것 같아 평일 휴일인 어제는 좀 푹 쉬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저 '키친' 안에 있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청소, 운동화 빨래 등 다른 집안일을 하고

점심으로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어있던 가스레인지와 싱크대를 주방세제로 슬슬 닦기 시작했고..
별 생각없이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일이 큰지라
"이 귀찮은걸 또 하고 있었네..." 하고 있는데
'아...! 오랜만에 키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깨끗하게 닦은 김에 기세를 몰아 
'키친' 에서 냉장고에 한달가량 잠복(?)해 있던 유부를 끌어내 손봐주고 한숨 돌리고 있자니
휴일근무 하던날의 으슬으슬한 기운도 조금은 가신거 같았다.

집안일을 끝내고 한숨 돌린 오후에, 한참을 널부러져 있다가
머리카락이 덥수룩한게 눈에 띄여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머리를 하다보니 밤에 마트가서 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 한달간 일용할 양식을 바득바득 스쿠터에 싣고 돌아왔다.


아마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고, 중심이 되는 공간을 꼽자면
바로 '키친'이 아닐까 싶다.
작년에 이사를 하고 혼자 살기엔 좀 크다- 싶은 이 집을 나름 꾸민다고 꾸며보기도 하고,
자주 가지 않는 작은방에서 가끔 바닥에 누워 자기도 해보고,
실제로 가장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큰방이기도 하지만,

위치상 집의 가운데에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생활하면서 별수없이 해야하는 집안일 때문에
가장 손이 많이 가게 되는 공간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데 막상 공간의 변화는 가장 적다- ^^;)
위에서 적었던 것처럼 별 생각없이 저런 귀찮은 짓을 하는 걸 보면
내 생활의 중심인 이 집, 그 중에서도 '키친' 이 가장 중심인것 같다.

나를 지탱해주는 게 내 생활이라면
기본적으로 내가 꾸미고 손이 간 이 집이 가장 물질적으로 힘이 될테고
그런 공간을 집안일이라는 이름 하에 서로 도우며 의지가 되는 것 같다면 무리수려나-
(대체 뭔소리래... =_=)

뭐 암튼.
지난달 말부터 최근 며칠 전까지
집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기도 했고.
뭔가 집이 좀 온기를 잃은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번 주말을 계기로 다시 내 home sweet, home. 으로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다.


- 도무지 책 이야기인지 그냥 휴일 보낸 얘기인지 뭔지 모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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